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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소리나 좀 덜 하고 싶다"_자고세 220420에 대한 기록
    공부 기록 2022. 4. 22. 14:08

    그제 '자고세'(자본주의 고민 세미나)에서는 『체 게바라 혁명가의 삶 1』(존 리 앤더슨 지음, 허진·안성열 옮김, 열린책들, 2015. 구판은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 플래닛, 2010)을 6장부터 10장까지 읽었다(요약 발제문은 아래 첨부). 개인적으로 전기라는 장르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는 중이다. 압도적인 발품을 들여 확인한 사실들에 기초해 한 문장 한 문장 쌓아 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전율을 느낀다. 지독한 수고로 복원해 낸 인생의 장면 장면이 감동적이지 않을 리가 없다.

     

    아무튼, 20대 중반의 에르네스토는 격동의 라틴아메리카를 떠돌며 '체'가 되어 가는 중이다. 의사 면허를 취득한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의학적 지식과 기술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의사의 역할」이라는 책을 준비하기도 했고, 정치적으로 각성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더욱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에르네스토는 알베르토가 될 수 없고 알베르토 역시 에르네스토가 될 수 없었던 분기점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또다시 앞서가는 것 같지만, 체는 마흔도 채 살지 못하고 죽는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가 살았던 만큼을 살았다. 별로 이룬 것 없이, 별로 이룰 것도 많지 않은 이 시절을 앞으로 더 얼마나,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김윤우 선생에게 농담처럼 던졌던 말,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고, 늙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다"는 격언 아닌 격언처럼, 나는 심장도 없이 머리는 더더군다나 없이 또 세월이나 보낼 셈인가. 나의 공부는 그저 소일거리일 뿐인가. 체가 불혹을 넘겨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떤 노인이 됐을까. 나는 그저, (제법 오래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헛소리나 좀 덜 하는 늙은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멕시코로 떠나는 에르네스토, 곧 피델을 만나겠지. 다음 세미나는 11장에서 14장까지, 4월 28일(목) 저녁에.


    [요약 발제문][각주:1]

     

    6.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이 노트들을 쓴 자는 아르헨티나 땅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죽었다. 그 내용을 수정하고 다듬는 사람인 는 내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 아메리카를 두루 떠돈 바로 그 방랑이 생각 이상으로 나를 변화시켰다.(199)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박사 학위를 딴 에르네스토, 또 여행을 계획한다. 스승 피사니 박사는 함께 알레르기를 연구하자고 했는데, 그는 피사니처럼 정체되고싶지 않다고.... 그의 부모는 왜 그리 아련히 떠나보냈을까, 무엇을 예감했을까(기억의 왜곡?)?

     

     

    7. 「어느 길이 북쪽인지도 모른 채

     

    볼리비아에 도착한 에르네스토는 하류 인생과 상류 인생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지냈다. 그 삶은 정신분열증을 앓듯 분열되어 있었지만, 에르네스토는 볼리비아 혁명(1952)의 내막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 했다. 멕시코 혁명과 함께 20세기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가장 의미 있는 사회정치적 사건들 중의 하나라는 볼리비아 혁명은 에르네스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혁명으로 인해 들어선 민주정권은 10여 년 혼란 끝에 결국 쿠데타로 무너진다. 그때 아메리카 전체의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하는 쿠바에 있어 볼리비아는 가장 약한 고리로 인식되었고, 체 게바라는 시간이 흘러 이곳으로 돌아와서....

     

    에르네스토가 정치에 별 관심이 없고 관련하여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는 언급이 종종 나온다. 그러면서도 눈앞의 장면에 대한 깊은 반추는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은가....

     

     

    8. 북의 발견

     

    에르네스토는 여행 중 몇 편의 기사를 기고했는데, 그중 마추픽추에 관한 글에서 그가 새로 품기 시작한 정치적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코카콜라 광고가 없는 곳을 찾아오게 되어 행운이다.에르네스토에게 마추픽추는 자신이 철천지원수로 여기게 된 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에 적당한 장소로 보였던 게 확실하다(230). 일기에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정치적 건전성에 대해서도 평가하기 시작.... 개안?

    에르네스토는 과테말라에 도착하기 전 이미 정치적 전향을 겪었거나 적어도 새로운 정치적 신념을 가지려 애쓰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 그의 여행 노트에 실린 여백의 메모참조(238~241). 그것은 에르네스토의 단호한 개인적 서약. 거기 담긴 정신은 곧 그의 잠재된 생각의 희미한 영역으로부터 나타나 그의 장래 행동 속에서 표현될 것이기 때문.

     

     

    9. 「굴욕도 영광도 없는 나날」

     

    에르네스토는 과테말라에 흥미를 느끼면서 그곳에 머물렀다. 의사로 일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다른 길을 찾았다. 그는 토론에서 유일한 길은 폭력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의사의 역할이라는 책을 준비하기도 했다. 혁명적 사회에서 의사가 맡아야 할 역할에 관한 지침서로 계획. 이제 그는 그 자신이 사회 의학이라고 부른 프리즘을 통해 정치혁명가로서 막 문턱을 넘고 있는 참. 아직 군사 훈련 받지 않은 상태라 의학은 그가 헌신하기 위해 가진 유일한 기능. 사회주의적 정부 형태야말로 추구해야 할 올바른 정치적 경로라고 판단.

     

     

    10. 「심한 찬물 세례

     

    과테말라 혁명에 참여, 실패, 멕시코행.

     

     

     

        [각주]

    1. 1) 장난삼아, 신판을 낸 출판사 열린책들 표기법에 따라 큰따옴표("")를 낫표(「」)로, 작은따옴표('')를 홑화살괄호(〈〉)로 표기해 봤다. 나에게 익숙한 체계가 아니라 앞으로는 안 쓸 생각이다. 특정 출판사들의 표기법에 대해서는 차제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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