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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건 당연하다, 같은 게 이상하지"_자고세 220512에 대한 기록, 동시에 조금 다른 이야기
    공부 기록 2022. 5. 13. 14:13

    어제 '자고세'(자본주의 고민 세미나)에서는 『체 게바라 혁명가의 삶 1』(존 리 앤더슨 지음, 허진·안성열 옮김, 열린책들, 2015. 구판은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 플래닛, 2010)을 15장부터 17장까지 읽었다. 요약 발제문(하기 참고)을 보면 알겠지만, 내용을 따라가기 조금 벅찼다. 모르는 이름들이 자주 나왔다가 금세 사라졌다. 누가 누구인지 식별할 수조차 없으니 어떤 관계와 상황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체와 피델의 입장 차, 그리고 의견 차. 내심 조마조마하면서도 결국 당연하다는 생각. 어떤 집단이든 갈등은 겪어야만 하는 것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경합의 건강함이다. 절차도 결과도 납득할 수 있는가, 존중할 수 있는가. 나의 최근 최대의 화두.[각주:1]

     

    조금 다른 이야기.

    최근 뜨거운 화제인 드라마 〈파친코〉. 덩달아 원작 소설에도 관심이 쏠렸는데 판권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것으로 안다. 원래 판권을 갖고 있던 곳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회사'. 그러니 나도 구태여 말을 보태 탈을 만들 필요는 없겠다. 새로 판권을 가져간 곳은 인플루엔셜.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출판사인 줄만 알았는데, 겸사겸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자칭 '지식 콘텐츠 기업'이란다. 알고 보니 윌라 오디오북 사업도 저기서 한다고. 뭐, 내가 기억하는 건 고작 '김혜수 광고'뿐이지만.

    더욱 재밌는 건 '인플루엔셜 사람들' 페이지. 전 사원의 사진이 있고, 각자의 '좌우명'(?) 같은 게 있는데.... 김윤우 선생과 나는 한참 웃기도 하고, 한편으론 씁쓸해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보고 한 마디 꼭 적으라면 뭘 적으시겠어요?" "...." 재밌다고 한 거 취소.

     

    '지식 콘텐츠 기업' 인플루엔셜 홈페이지

     

    또 나는 괜히 심술을 부려 보기도 하였다. 『파친코』 좋다, 좋겠지, 좋다니까(안 읽음). 그런데 과연 그것만 좋은가. 좋은 건 유일하지 않다, 좋은 건 많다. 그리고, 지금 좋은 것만을 지금만 좋아해서는 좀 곤란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시각각 유행하는 것들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창래'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 『척하는 삶』을 읽어 보셨는지, 또 '정영목'이라는 이름도 함께 기억하실 건지. 나는 나의 알량한 취향을, 얄팍한 경험을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걸까? 글쎄, 나는 그저 '좋은 게 그거 말고 또 있다'라고 항변하고 싶을 뿐이다, 그럴 때가 좀 자주 있을 뿐이다. 『파친코』뿐 아니라(읽겠음).

     

    하나만 더.

    십수 년 전 읽었던 책의 저자를 최근 아주 우연한 기회에 뵙게 된 김에, 그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삼인, 2002).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에 나온 책이며, 그 책은 또 20년 전에 저자가 한 "행동"으로부터 기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40년 전 있었던 '부미방 사건'(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말이다. 나는 관련한 사실들의 일부를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고, 또 그걸 기어이 당사자에게 말했다. 너그럽게도 선생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밤새. 나는 연신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분명 듣고 배웠는데, 천생 못난 학생인지라 대부분 잊고 말았다.

     

    마침 또 5월. 다시 광주를 기억해야 하는 시간이다. '다시'. 이 말은 어느 정도의 중단, 휴지기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가? 상처는 이향과 귀향을 언제까지고 반복해야만 하는가? 영원한 어떤 회귀 속에서,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어렴풋한 장면을 겨우 건져 낸다. 대학교 때, 여전히 그렇지만 지금보다 자격지심이 더욱 강했던 시절, 지적으로 존경하던 친구의 권유였다. 그가 어떤 이유로 권했는지도, 당시 나의 독후감이 어땠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책을 읽는 동년배 앞에서 뭐랄까, 다소 부끄러웠달까, 그런 기분.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이 책을 모교 도서관에서 빌렸다. 이 책은 그때 그 책일까? 그동안 어떤 사람들의 손과 눈을, 머리와 가슴을 스쳐 갔을까. 그동안 나의 이해는 깊어졌을까, 표현은 충실해졌을까. 자신이 없고, 다시 부끄러워지는 중.

     

    아무튼, 다음 세미나는 18장에서 19장까지, 5월 19일(목) 저녁에. 신판 기준, 1권이 드디어 끝난다. 2권에 실린 3부 제목은 "새로운 인간 만들기". 기대된다.

     


    [요약 발제문]

     

    15. “물과 폭탄의 나날

     

    배신자 에우티미오를 처형한 체. 그의 일기에서 나온 극도로 사실적인 서술, 총알이 관통하여 생긴 상처에 대한 과학적 약술은 폭력에 대한 놀라운 초연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 순간(에우티미오가 피델 앞에 무릎 꿇는 순간) 그는 나이 들어 보였고, 관자놀이에는 우리가 이전에 결코 알아보지 못했던 흰머리가 상당히 많이 있었다.”(400) 그때 이후 체는 혁명 규칙을 위반하는 자들에게 언제라도 직접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냉혈한이라는 명성을 얻었다(401).

     

    체가 자신의 를 제거하고 집단의 성원이 되고자 마음속 깊숙이 느꼈던 열망은 천식이 그에게 안겨 준 태생적 고립에서 연유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407).

     

     

    16. 마른 소와 말고기

     

    처형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체와 피델의 의견은 종종 엇갈렸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독자로서 내심 불안했지만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거였다. 같은 게 이상한 거지, 다른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17. 온갖 적과 싸우며

     

    쿠바 혁명전을 치르는 도중 체는 피델에게 정면 도전하기도 하는데, 어후 복잡하다. 아무튼 당시 체가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 관련 기록들을 보면 쿠바 반란 운동이 사상적으로 얼마나 분열되어 있었는지 엿볼 수 있다(479~481).

     

     

    [넋두리]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쓰이는 말들이 제법 많다. 치바토(비밀정보원), 과히로(농부), 그링고(미국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 야노(평야, 도시) 등등. 맥락상 대충 알 수 있긴 하지만, 너무너무 불친절하다.[각주:2]

     

     

     

        [각주]

    1. 1) '공자님 말씀'을 여기 적어 두는 것이 옳을까?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본문으로]
    2. 2) 다시 보니 있긴 있다, 아주 작다랗게. 1천 쪽이 넘는 책이고, (개인적이지만, 아마도 대다수에게, 영어보다는) 익숙지 않은 언어가 자주 나오는 책이다.  인명이나 지명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보통 명사까지 독자가 익혀야 하는 걸까? 차라리 원어를 최초 한 번만 병기하고, 그 뒤에는 우리말로 썼다면 어땠을까. 지속적인 원어 사용을 꼭 고집해야 했다면 틈틈이, 가령 새로운 장이 시작할 때마다 다시 한 번 병기한다든가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어떤 장은 충분히 길므로). 아쉽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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