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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_자고세 220324에 대한 기록
    공부 기록 2022. 3. 25. 12:22
    나 자신 무용하기를 오랜 시간 바랐다. 어차피 어지러운 세상, 삶 하나 얹은 것도 모자라 말과 글까지 얹는 우를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천성이 가볍고 어리석어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했다(미안한 사람들이 많다). 부덕과 무지의 소치다. 반성하는 길은, 부끄럽게도 공부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일. 그 단순한 과정이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느낌이다(예전에는 왜 그리도 홀대하였던가, 진심이 아니었던 것도 아닌데). 
    기왕 가는 길, 되도록이면 아프게 지나갈 생각이다. 몇 년 전, '통과'라는 말을 한동안 붙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그저 칭병할 때였는데, 염치없게도 나는 종종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범상한 신음을 되뇌기도 하였다. 무엇이 지나간단 말인가, 무엇이 지나가기를 나는 바란단 말인가. 죗값을 제대로 치를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공소 시효가 다 되기만 바란다는 말인가, 나는, 비겁하게. 그때부터 나는 '通過'를 '痛過'로 읽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것은 아픈 것이다, 아픈 것조차 지나가겠지만, 지나가는 한 나는 계속 아플 것이다.
    공부한 기록들을 이제라도 조금씩 남기려고 함은 그래서다. 이 보잘것없는 파편들 사이를 거닐면서도 나의 살점은 뚝뚝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나의 피는 철철 흐르고 넘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고통도 기어이 끝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나의 고통만 헤아리는 사람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바람이야말로 내가 당신을 계속 기다리다 지쳐, 이제는 찾아 헤매려는 까닭이다.

     

    어제 '자고세'(자본주의 고민 세미나)에서는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선순환, 2021) 9~13장을 함께 읽었다(요약 발제문은 아래 첨부). 우리는 틈틈이 고병권 선생의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소환하고는 했는데, 앞으로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출판 편집자인 김윤우 선생은 작업 현장에서 느낀 일들을 생생히 공유해 주는 능력이 탁월한데, 이날도 마찬가지. 개선되지 않는 비효율적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공감이 가면서도 답답하달까. 분명히 개별적인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근본적인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놓지도 못하는 느낌. 또다시 심각한 반동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 노동 운동에 투신한 사람도 33년 전 신문 기사 스크랩을 보며 울컥하는 판국에, 우리는 또 무엇을 계속할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참으로 착잡하다.

     

    남은 분량은 여섯 장. 원래 속도라면 한 주에 끝내기에는 조금 많은 양인 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 마음이 조급해져 동료를 채근했다. 그러나 김윤우 선생은 만만치 않은 분. 다음 주(3/31)에 네 장을 하고, 그다음 주(4/7)에 나머지 두 장과 새로운 책을 약간 나가기로 합의. 다음엔 또 무엇을 읽을까. 속도는 물론 대상을 조율하는 것도 공부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약 발제문]

     

    9장. 성장증후군

     

    노동 분권화

    공장 시스템이란 그냥 단순히 기계가 하나 있는 것이 아니다. 기계들의 시스템, 기계가 기계를 생산해 내는 시스템, 노동자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배치하며 착취하는지에 관해서 엄청난 것을 시사하는 시스템. 마르크스는 공장 시스템이 궁극적으로 다른 형태의 노동을 모두 몰아 낼 것이라 했는데, 글쎄?

    자본가들은 공장 시스템을 도입하여 노동의 가치를 떨어트렸고 노동자들의 기능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지만, 1970년도가 되자 정반대의 문제가 등장했다. 대규모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조직화가 잘 되었으며, 자본가들에 대항해서 엄청난 힘을 행사했던 것. 자본가들은 노동의 분권화를 통해 반격. 위계질서가 강했던 노동조직이 수평적이고 네트워크화됨.

     

    변화율만 보지 말고 총량도 봐라! (갑자기?!)

    이익률의 하락과 이익의 절대적 총량 관련,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근본적인 문제. “어떤 이유들로 잉여가치가 절대적으로 하락한다. 같은 이유로 잉여노동 및 잉여가치의 총량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자본이 만들어 내고 차지하는 이익을 증가시킨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 가? 이렇게 명백한 모순에는 어떤 조건들이 수반되는가?”

    경제 규모가 크면 클수록 성장률이 낮아야 일자리나 수요를 새로 더 창출할 수 있다. 변화율과 총량 사이의 관계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자료에 담긴 계급적 편향성에 주의하랏!!!!

     

     

    10장. 소비자 선택권이 박탈당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새로 만들어지는 공간, 기술, 상품들은 과연 소비자를 위한 것인가? 허드슨야드는? 셰드는? 인터넷은? 대통령 집무실은?? 언뜻 보면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높이려고 만드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현대 자본의 본질적인 속성이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일상생활에 상징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지, 진짜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권리, 자유는 침탈당하고 있다. 자본은 단순히 자율성이라곤 없는 소비지상주의를 부추길 뿐이지만 민중들은 사회적인 공간을 접수하고 그 공간에 멋과 맛(원문 뭘까....)을 부여하 여 도시를 도시답게 만들 수 있다(생산수단도 마찬가지겠지? 공산주의!!!!).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자본을 분석하려면 변화율, 총량, 속도 및 전체적인 연관성에 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것들은 소비지상주의에도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 특정한 생활양식이 나타난다. 그것은 표면적인 만족과 즉각적인 희열을 주지만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을 소외시키며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리하여 일상생활에 불만을 가지게 되고 그 불만이 곪아 터지게 되는 것.

     

     

    11장. 원시적이며 근원적인 자본축적

     

    자본의 원죄, 피와 불의 문자들로 기록된 축적의 역사

    마르크스는 자본이 도용, 축출, 퇴출 등 폭력적인 방법으로 축적되고 사회질서를 재편성한 것이 그것의 원죄라고 보았다. 데리다가 지적했듯, 어떠한 사회질서든 그것이 존재하게 되면 그 질서가 처음 형성되었을 당시의 폭력적인 흔적을 지니게 되며 그것은 지울 수가 없다. 그 원죄에 해당하는 폭력은 끊임없이 그 사회질서를 따라다니며 자꾸자꾸 돌아와서는 또 따라다닌다.

     

    [...] 나는 정초적이거나 법정립적 폭력 자체는 법보존적 폭력을 포함해야만 하며 결코 그것과 단절될 수 없다는 해석을 제안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초적 폭력은 자기 자신의 반복을 요구하며, 정초적 폭력은 보존되어야 하고 보존될 수 있어야 하는 것—유산과 전 통, 공유 재산에게는 항상 이러한 보존의 약속이 존재한다—을 정초한다는 점은 정초적 폭 력의 구조에 포함되어 있다. 정초는 약속이다. 모든 정립은 허락하고 약속하며〔미리 기록 하며〕, 기록하고 약속〔미리 기록〕함으로써 정립한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되풀이 (불)가능성은 가장 파괴적인 정초의 순간 속에 보존의 약속을 기입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기원적인 것의 중심에 반복의 가능성을 기입한다.[각주:1]

     

    마르크스가 말하는 원시적인 자본축적은 결국, 노동시장에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방법 외에는 존재할 수도,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 노동계급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

     

     

    12장. 강탈에 의한 자본축적

    하비는 앞장에서 슬쩍 꺼내 놓은 내용을 바로 다음 장의 주제로 언급하고는 하는데, 이 장도 마찬가지. 룩셈부르크가 제기한 ‘원시적 자본축적이 일어날 수 있는 외부의 공간이 전혀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다루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자본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대규모 소개 작전

    특정 자본가 계층이 이미 축적된 재산을 탈취하거나 훔치는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해 가는 것. 신용 시스템을 통한 자본의 집중화. 연금, 보험, 조세 등등.

     

     

    13장. 생산과 실현

    공장 이후 노동자계급, 아니 노동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강철이나 자동차가 아니라 햄버거를 만들고 커피를 내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새로운’ 노동자계급. 이들은 즉자적 계급을 형성하고 대자적 계급이 되고 있는 중.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하비는 말한다.

     

     

        [각주]

    1. 1)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88~89쪽(강조는 원문). 관련하여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 그린비, 2017, 200쪽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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