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30일,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대회의실에서 2022 파주 에디터스쿨 1학기 포럼 '지속가능한 출판을 향한 열린 시도, 꾸준한 노력'이 열렸다. 이번 에디터스쿨 기획위원으로 출판공동체 편않의 정지윤 씨가 참여했는데, 포럼 사회자로도 수고해 주었다. 패널로는 김미래 쪽프레스·고트 편집장, 신우승 전기가오리 대표, 이정신 오월의봄 편집자. 모두 내가 평소 관심을 쏟고 응원하는 창작자/공동체/회사, 결국 사람들이다. 김미래 편집장이야 직접 인터뷰도 한 적이 있지만 역시 놀라운 언변이었고, 신우승 대표는 그동안 작업물만 접하다 이번에 첫 육성을 들었는데(=전기가오리 후원 혜택을 제대로 안 받았다는 자백) 전달력이 아주 좋았다. 이정신 편집자가 전해 준 오월의봄 이야기도 아주 생생하고 흥미로웠고. 여기에는 포럼 중 노트했던 몇 가지만 옮겨 두자.
김미래 쪽프레스·고트 편집장 우선 김미래 편집장은 서두에, 그리고 나중 질의응답 시간에도 '지속가능성'이란 말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많은 경우 '지속'이란 보통 어떤 '착취'를 수반하게 되고, 그래서 그걸 '가능'하다고 표현하는 게 좀 오만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래서 자신은 '지속지향'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고. 나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다가도, 내가 그렇게 오만했나.... 하는 반성 섞인 의문이. 그러면서 또 말장난.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건 아니었고, 가능을 지향하는 거니까, 그럼 나는 '지속가능지향'이라고 말해 볼까 하고. 아무튼, "배우고 나서 무시한다." 기성 출판사에서 배웠던 것을 쪽프레스에서는 과감히 무너뜨린다는 것. '창조적 파괴'랄까. 그러나 김 편집장은 '배운다'에 방점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무턱대고 무시부터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알고 나서야 제대로 파격할 수 있다는 말. "장이 열리면 나간다." 엔드유저(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자리는 마켓이다. 그리고 그곳이 또 다른 시작점이다. 편않도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가 봐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는 요즘이다. 장이 서면 나가자. "누군가의 지속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우리도 좋다."[각주:1] 쪽프레스는 '콜라보'를 많이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전기가오리와도 종종 작업하는데, 그게 결국 자신의 지속뿐 아니라 타자의 지속에도 좋은 길이라는 말. 넓은 시야와 따뜻한 시선이 좋다.
신우승 전기가오리 대표 사실 전기가오리는 내가 평소에 많이 참조하고 편않 회의 때도 자주 소환하는 모델인데, 그만큼 실현시키기가 어렵다는 걸 매번 느낀다. 신우승 대표가 직접 표현한 대로 자신을 '갈아 넣으며'(아무거나 갈아 넣는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건 확실히 아닌데....) 방대한 작업량을 소화하고 있으니. 논쟁적인 사회정치 주제를 다루면서도(시의성), 후원자가 지겨워하지 않도록 예상치 못한 요소를 끊임없이 제공한다(의외성)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본받고 싶은 부분은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장학 사업. 신 대표는 한국 학계, 특히 철학계는 후학 양성에 실패했다고 확언하며, 전기가오리가 적어도 '다음'이 있을 만한 토대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3명에게 매달 지급하는 금액이 총 500만 원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출판계뿐 아니라 언론계에, 내가 저런 일조를 할 수 있을까, 욕심이 나기도 겁이 나기도. 그런데 한 가지. 신 대표가 '적합한 비용의 빠른 지급', 가령 번역이나 디자인 비용 등을 바로바로 지급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렇지 않은 건 비윤리적이라고 하면서 기성 출판계를 비판(비난?)할 때, 사실 조금 놀랐다. 아니, 찔렸다고 해야 하나. 분명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출판계의 오랜 숙제이긴 한데, 출판계가 과연 숙제를 풀(수 있을)까? 모든 출판사가 전기가오리처럼 후원 시스템을 도입하지도, 또 할 수도 없을 터인데. 이건 또 나의 숙제로.
이정신 오월의봄 편집자 편집자 4명, 디자이너 1명, 마케터 1명. 이 인원으로 연간 20~25종을 낸다. 그것도 하나같이 울림 있는 책들을. 다른 패널들을 비롯하여 현장에 있는 방청객들도 집중한 부분은 바로, '병렬적으로 일하기'. 무슨 뜻일까. 우선 오월의봄에는 관리가 따로 없다. 각자 의견을 내면 별 제지 없이 그대로 수용되는데, 이게 또 때론 큰 부담이 된다고. 그래도 어떤 가치를 공유하는 구성원들이 병렬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확실히 내가 받은 인상인데 '따로 또 같이', 일하다 보면 또 이뤄 내는 게 있다고. 다만 이런 고민, 의문은 계속 든다고 한다. '이렇게 계속될 수 있을까?' 이 편집자는 오월의봄이 아주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순 없다고 말했는데, 나는 이러한 자각이 몹시 아프고 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나 중요하고. 달리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계속되어도 괜찮은 걸까?' 나 스스로도, 편않도, 오도카니도,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 그래도(그래서?) 오월의봄 다른 편집자들이 일하면서 느낀다는 이 말들은 든든하다. "소외되지 않는 노동", "연대로서의 노동".
1) 참고로 일부는 정확한 워딩이 아니며, 내가 받은 현장의 인상이, 그리고 기억의 영향이 스며 있다. 개인적으로 전달의 숙명이라고 생각하지만, 감안해 주시기를 바라며, 자세한 내용이 더 궁금하신 분께선 본문 말미에 있는 포럼 영상 링크를 활용하시길 바란다. [본문으로]